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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투, 빚투, 동성애, 성차별, 페미니즘, 인종 등 사회적 이슈가 가장 날카롭게 한국사회를 휘젓던 시기를 기억한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변화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한국사회는 윤리적으로 매우 엄격해졌다.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문제적인 행동이 어마어마한 비난과 처벌 속에서 교정되었다.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윤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추상적 사고’가 강요되는 사회 분위기가 플린 효과(flynn effect)를 가속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초딩일 때에는 흰색, 살구색, 검정색 크레용을 책상에 올려두고 그 중에 살색을 고르라는 재치 넘치는 문제로 머릿속을 환기하는 것 정도로도 추상적 사고 교육이 충분했다면, 오늘날 초딩들에게는 당시와는 아주 다른 논리 문제가 ‘실제로’ 주어지고 있다.
사회가 윤리적으로 민감해지자 좌우를 막론하고 기성세대의 사회화 방식이었던 타자화/이분/편견이‘정치적 올바름’에 의해 길바닥으로 끌려나와 폐기됐고, 온갖 종류의 가해자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더러는 실형을 살았다. 나름 사회에서 명망있던 사람들까지도 추악한 행위가 탄로나 처분된 이후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지속하고자 하는 이에게 조직은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강력한 ‘추상적 사고’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감수성’시대였다.
2.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식자층 취급을 받았던 문학계가 최근 맞을 매를 맞았다. '당사자주의’ 문제였다. 적지 않은 문학작품이 실재하는 타인의 삶을 멋대로 재현하거나 재연해버리는 식으로 생산되어 왔는데도 각종 학술적, 예술적, 정치적인 이유로 그 동안은 묵인되고 심지어 비호되어 오다가, 지난 21년 소설가 김○○씨의 모 소설이 실제 존재하는 동성애자를 그대로 차용하여 이야깃거리로 삼았다가 아웃팅 물의를 일으킴으로써 독자들이 문학계에 본격 항의한 사건이었다. 해당 도서는 판매중단되었고, 문학계에서 조차 더 이상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해 ‘발의’하거나 ‘발제’하는 것 자체를 삼가자는 풍조를 무시하기 힘든 분위기가 됐다.
당대 젊은 좌파들은 시류에 편승하여 ‘당사자주의’를 앞으로의 한국사회가 사회문제를 대할 때 반드시 준수해야할 프레임워크로 인식하고 있는데, 실상 당사자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장애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쓰임과 한계가 보여진지 오래며, 현 젊은 좌파들이 구사하는 당사자주의는 ‘정체성 정치’에 머무는 수준인데다, 1)지성적이지 않으며 2)윤리적이지 않고 3)정치적으로 취약하기까지 해 문제가 크다.
1) 당사자주의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문제에 접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상적 사고-지성과 대립하고, 정체성 정치이므로 정치적 올바름과 맞지 않고
2) 당사자주의는 당사자군群에 속해 있는 자들에게 거의 무제한의 발언권(헤게모니)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이지도 않다.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는 성노동 운동가들이 성매매 양성화를 원치 않는 성노동자들을 방해물이나 계몽의 대상으로 단정짓고 관용 없는 워딩을 한다든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즘에 동의하지 않는 여성을 ‘흉자’라고 명명한다든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 젠더 여성이나 크로스 드레서를 여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혐오발언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예다.
3) 결국 당사자주의는 위의 두가지 특징에 따라 당사자 일부를 매수/포섭하는 것으로도 손쉽게 정치적 아젠다를 형성할 수 있으며, 당사자주의라는 닫힌 생태계 안에서 ‘논리적 모순을 견딘다’라는 해괴한 테제를 통해 저품질의 아젠다를 저항 없이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병약하기까지 하다. 이때에 논리적 모순을 견디지 못하는 조직원은 외부에서도 겪어보지 못했던 잔인한 린치를 당하기 일쑤다.
3.
근래 청년 좌파가 주도한 성평등 이슈와 사회 전반의 윤리의식 강화 덕분에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한 곳으로 변화되었음을 부정해선 안된다. 하지만 젊은 여성운동가들의 잘못이 있다면 그들이 온갖 종류의 페미니즘 간에는 무규제에 가깝게 관용적으로 연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심지어 파시스트 그 자체인 래디컬 페미니스트까지도!) 정작 보수주의 페미니즘에 대고는‘흉자’를 논했다는 점일 터다. 이는 편견을 넘어 고작 편협에 이른 경우로, 페미니즘 운동이 좌파선전의 도구적 존재로 전락해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래디컬 페미니스트 배○○ 씨가 활동을 무기한 중단한 이유가 페미니스트들의 인신공격에 따른 것이었음이 밝혀진 바, 현장의 여성운동가들은 아노미를 불러일으키고 논리적 모순을 견디도록 주문하는 ‘매수된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항상 의심해야 할 것이다.
※ 본 기고문은 국민의힘 공식 의견이 아닌, 청년당원 개인의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