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변인 공식 논평 및 보도자료입니다.
홍준표 대통령후보는 2017. 4. 29(토) 12:40, 경남 김해시 김수로왕릉 공원에서 김해 유세를 하였다. 황천모 수석부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ㅇ 홍준표 후보 유세 주요내용
◇ 후보는 유세에서 18세 때 단신으로 추풍령고개를 넘으면서 불렀던 노래'추풍령'을 부르며 가난하고 힘들었던 젊은 시절을 되새겼다.
◇ 후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공동묘지에 모셨다가 잘되면 이장하겠다는 말에 아버지는 "내 인생이 거기까지이다"면서 이장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 서민들의 꿈은 자기 자식 잘되고, 작은 집이라도 하나 가지는 것이다. 저는 제 엄마같은 서민들이 잘 사는 것이 홍준표의 마지막 꿈이다.
홍준표가 18살 때, 1만 4천원 들고 단신으로 추풍령을 넘었다. 그 때 추풍령을 넘으면서 제가 이 노래를 불렀다. 그 당시에 저희 집에 돈이 없어서 빚을 7만원을 냈다. 대학등록금이 5만 6천원이었다. 그런데 5만 6천원에 한 달 하숙비만 딱 저희 아버지가 줬다. 주고 죽든지 살든지 네가 알아서 해라. 그래서 제가 1만 4천원 달랑 들고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서울에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고 아무도 없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생활이 지금 45년이 넘었다.
제가 오늘 아마 현수막 전체를 다 바꾸라고 했다. ‘홍준표를 찍어야 자유대한민국을 지킵니다’를 포스터에 있으니 오늘부터 현수막을 바꾸라고 했다. 일당 800원 받던 경비원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또 까막눈의 어머니를 가진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제 고향이 창녕 남지다. 남지에서 오신 분들도 많이 봤다. 그런데 7살 때 저희 집이 망했다. 그래서 리어카에 짐을 싣고 이틀을 걸어서 대구로 이사를 갔다. 대구 신천동에서 1년 살다가 신암동에서 1년 살다가, 말하자면 저희 아버지는 막노동을 했다. 막노동을 매일 가서 하고 돌아와서 가족을 먹여 살리니까 이것이 체질에 안 맞는다. 다시 농사를 지으러 창녕읍으로 또 이틀 걸어서 내려갔다. 제가 9살 때인데 위천에서 잤다. 위천에서 잤는데 그 당시에 밥 한상에 30원이다. 그런데 여섯 가족이 내려오면서 밥 두상만 시켰다. 돈이 없었다. 그래서 위천에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다시 걸어내려 오다가 공복에는, 배고플 때는 허기를 매우기 위해서 엿이 최고다. 그래서 엿을 씹으면서 창녕까지 또 걸어갔다. 창녕에서 1년을 사는데 저희 아버님이 창녕에서는 알루미늄을 리어카에 끌고 다니며 팔았다. 그런데 장사에 소질이 없으니까 외상만 잔뜩 주고 수금을 하나도 못했다. 그래서 또 망해서 또 간 곳이 합천 산골로 들어갔다. 거기에 들어가서 하천부지가 한 600평이 된다. 강기슭에 그것은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점용권을 얻는 건데 600평 하천부지를 점용권을 얻어서 거기에 매일 보리만 심어서 보리농사해서 그걸 1년 양식으로 했다. 그런데 안동댐이 생기기 전이었다. 여름이 되기 전에 보리가 익기도 전에 홍수가 나면 쫄딱 굶어야 한다. 제가 피눈물 나는 세월을 살아왔다. 대학에 들어가려고, 의과대학이 가고 싶어서 하도 집이 어려우니까, 의과대학을 가서 의사가 되면 그 당시에 존경도 받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의과대학에 가면 돈이 많이 드니 육사를 가라고 했다. 그 당시에 육군사관학교에 돈 없는 사람들이 많이 갔다. 71년 10월 달에,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되고 두 달을 놀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71년 12월 23일 파출소에 끌려갔다. 끌려가서 순경한테 혼났다. 왜 잡아갔는가 하니 훔친 비료를 샀다고 장물취득 혐의로 끌려갔다. 그런데 실제로는 나중에 보니까 조합장이 돈을 해먹고 아버지한테 덮어씌웠다. 2년 뒤에 그것이 밝혀졌다. 제가 그것 하는 것을 보고 검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경찰 위에 검사가 있으니 검사를 해야겠다고 해서 육사를 포기하고 고려대학교 법학과 시험을 봐서 됐다. 됐는데 그때부터 아버지가 등록금이 있어야 보내주니 빚을 7만원 내서 등록금을 내주고, 첫 달 하숙비만 주고 나머지는 없다고 해서 올라가서 고학을 했다. 74년 무렵부터 해서 6월말에 뒷집 사람이 자기 집에 불을 질렀는데 바람타고 자기 집에 안타고, 우리 집만 탔다. 그게 초가집 조그마한 것이다. 집은 다 타버리고 그러니까 옛날에는 시골에 서울로 전화하려면 전화가 없을 때라서 우체국에 전화를 한다. 미리 한번 전화를 해놓고 30분 뒤에 집에 연락해서 받아야 한다. 옛날에는 그렇게 통화를 했다. 하도 꿈이 뒤숭숭해서 집에 전화를 하니 집에 불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내려 가보니까 텃밭에 거기도 우리 땅이 아닌데 텃밭에 비닐을 쳐놓고 장마철에 밑에 짚을 깔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의논해서 울산에 가자고 했다. 울산이 그 당시 현대조선소가 있고 또 새롭게 공업단지를 만드니까 거기로 먹고 살러 가자고 해서 울산으로 갔는데 그 때 전 재산 다 팔아보니까 32만원이었다. 그래서 울산에 달셋방을 얻고 아버지는 현대조선소의 야간에, 옛날에 우리가 갔을 때 현대조선소에 담이 없었다. 그냥 철조망을 쳐두고 배를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배를 짓다 남은 철근조각을 지키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밤에 의자를 하나 놓고 백사장에서 철근조각을 지키는 경비원을 했다. 그 때 제 기억에 일당이 800원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울산의 달셋방에서 살았다. 그 때 우리 가족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어떻게 이렇게도 일이 안 풀리고 꼬이기만 하고 세상이 왜 이런가, 세상이 한 번 뒤집어졌으면 좋겠다. 이 불공평한 세상 발칵 뒤집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고려대학교를 다닐 때, 숨어서 지하 유인물도 많이 써줬다. 쓰다가 정보과에 걸려가지고 열 몇 시간 맞고 나오는 그런 세상에 살았다. 제 아버지가 열 달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간암이었다. 그 때 회사에서 천막을 해준 것도 아니고 백사장에 의자만 놔두니까 추위를 견디라고 회사에서 준 것이 막소주를 줬다. 댓병 막소주를 이렇게 주니까 그 추위를 견디려고 막소주를 1.8L짜리를 밤새도록 한 병씩을 다 마셔버린다. 그러다 보니까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것이 제 기억에 75년도인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남지 공동묘지에 지금 안장되어 있다. 제가 안장을 할 때 나중에 잘 되면 옮겨준다고 했는데 그런데 네가 아무리 잘 돼도 묘소 옮기지 말라고 하셨다. 내 인생이 거기까지라고 하셨다. 통상 큰 정치를 하고, 대통령을 나오면 조상 산소를 옮기고 다 그렇게 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내 인생이 그것밖에 안 된다. 네가 아무리 잘 되더라도 묘소 옮기지 말라고 하셔서 그래서 묘소 안 옮긴다. 저도 지금 강산이나 기슭에 한 만 평사서 아버지, 어머니를 같이 모실 수 있는데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한다.
정말 대한민국 서민들이, 국민의 70%에 달하는 서민들이 힘들게 산다. 저는 밑바닥부터 살아봤기 때문에 경남지사로 와서 서민자녀 교육지원사업을 해야겠다. 그래서 제가 3년 반 전부터 제가 어릴 때 공부하면서 고통을 받았던 것을 생각해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 학비를 대주고, 인터넷 강의를 듣게 해주고 그 다음에 대학에 들어가면 1인당 300만원씩 장학금 주고 또 서울에 지금 기숙사가 강남에 400명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짓고 있다. 우리 경상남도의 제 고향의 후배들이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그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서울 가면 지금 대학생생활비가 100만원이 훨씬 더 든다. 그래서 제가 도에 있을 때 15만원만 하자. 삼시세끼 먹여주고, 2인 1실 호텔급으로 지어주고 도서관도 마련해줘라. 그리고 여학생은 3,4층에 하고 남학생은 1,2층에 해라. 여성 상위시대다. 그래서 금년 10월이 되면 강남에 제일 좋은 땅이다. SRT 출발하는 데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세곡동 땅을 샀다. 그래서 우리 경상남도에서 정말 힘들고 불쌍하게 사는 서민들, 우리 서민들의 꿈이 나는 단순하다고 본다. 첫째가 내 자식이 잘 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못살고 힘들고 억울하게 살았지만 내 자식만이라도 잘 살고 또 큰 소리치고 속된 말로 출세 좀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나는 서민들의 첫째 소박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가 우리 서민들의 꿈이 오두막살이라도 좋으니까 자그마한 내 집 하나 가져보자 하는 것이 서민들의 소박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좀 없으면 어떤가. 자식들이 부모를 존경하고, 또 부모가 자식에게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대한민국 서민들의 생활상이다. 제가 60세가 이제 넘었다. 이렇게 살면서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하고 물어보면 저는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김구선생도 아니다. 제 어머니다. 제 어머니는 글을 모른다. 옛날에 그런 분이 많았다. 글을 모르니까 대구에서 자취를 할 때 밖에 나가실 때 제가 꼭 손바닥에 볼펜으로 버스 번호를 적어드렸다. 어머니께 돌아오실 때 꼭 번호를 보고 오시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어머니도 자기가 살면서 없으니까 가난하고 못사니까 무시당하고, 희생당하고, 일만 생기면 덮어씌우고 이런 식으로 살아도 불평 없이 착하게 이웃들 돌봐주고 그렇게 착하게 산 내 엄마같은 대한민국 서민들이 정말 잘 살아 봤으면 좋겠다.
경남지사 할 때 제가 땅 한 평 안 팔고 빚을 다 갚았다. 왜 빚을 갚았겠나. 없이 살아보니 빚을 얻어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옛날에 장리곡이라는 것이 있다. 봄에 장리를 얻어서 봄에 보리쌀 한 가마니를 얻으면 가을에 한 가마니 반을 갚아주는 게 옛날에는 장리쌀이라고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제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이 세상에서 빚이 제일 무섭다. 저것은 휴일에도 이자가 나간다고 얘길 하기에 제가 경남지사 하면서 빚을 보니까 1조 3488억이었다. 그래서 빚을 갚아야겠다고 해서 행정개혁, 재정개혁해서 땅 한 평 안 팔고, 그 빚 갚는 과정에서 제가 강성귀족노조, 진주의료원 노조와 3년을 싸웠다. 일도 안하고, 국민의 세금만 축내는 걸핏하면 서울 광화문에 올라와서 민주노총 파업하는 데에 제일 앞장서고, 그런 것 왜 세금을 주는가. 제가 없애버렸다. 처음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 되니까 왜 없앴는가의 이유를 알고 나서부터는 민주노총하고 좌파들 외에는 시비 거는 사람이 없다.
두 번째가 전교조다. 대한민국의 어린 학생들을 종북좌파 교육을 시키는, 제가 대통령되면 전교조 용서하지 않겠다.
세 번째가 종북세력이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북한을 추종하고 걸핏하면 북한을 찬양하는 종북세력들 제가 용서하지 않겠다. 정치인들한테는 전교조, 민주노총, 종북세력을 건드리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그 사람들이 워낙 무섭다.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또 다른 걸 빙자해서 공격을 하니까 그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무서워서 정치인 중에서 이 세 세력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사람이 없다. 진주의료원 노조도 그렇다. 14년 전에 김혁규지사, 김태호 지사, 김두관 지사 다 겪으면서도 폐업을 해야 한다고 14년 전부터 얘기하더니 그런데 겁이 나서 못한 것이다. 제가 했다. 우리 경상남도가 미래 50년 동안 먹고살 것을 다 마련해주고 제가 나갔다. 오늘 지금 진주 사천에 항공국가산업단지가 승인이 떨어졌다. 또 밀양에 나노테크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오면 그 확산효과가 김해까지 온다. 또 거제에는 해양플랜트국가산업단지가 들어오게 된다. 금년 말이면 공사를 다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경상남도가 50년 동안 먹고살 먹거리를 다 마련을 했다. 이제는 경상남도가 제대로 해야 것이 딱 두 가지다. 하나는 김해공항의 활주로를 3.8km이상 늘리는 것, 그렇게 해야지 김해 일대가 에어시티가 된다. 항공도시가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김해시가 겪는 소음피해는 정부가 반드시 보상을 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김해공항으로 이어지는 모든 KTX 노선을, 말하자면 밀양에서 김해까지 KTX 노선을 새로 하겠다. 그래서 김해가 대한민국의 항공중심 도시가, 에어시티가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
여러분, 홍준표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눈치를 안 본다. 옳다고 판단되면 반드시 해 왔다. 너무 눈치보고 머뭇거리고 왔다갔다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제 5월 9일이 선거다. 1번하고 3번을 자세히 보면 두 정당이 하나다. 말하자면 호남 1,2중대다. 지금 누구를 뽑아도 당을 합치게 되어있다. 그리고 1번을 한번 자세히 보라. 친북좌파다. 자기가 되면 김정은에게 결재를 받아서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할 것인데 그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김정은이 될 것이다. 그럼 3번을 보면, 여러분 3번한테 많이 현혹되어 있는데 3번의 선거포스터를 한번 보시라. 팔을 들고 있는데 그 선거포스터 합성이다. 합성사진이다. 합성사진인가 아닌가 하고 제가 물어봤다. 그러니까 디자이너가 했기 때문에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한다. 정치 22년 했지만 세상에 선거포스터를 합성 것은 처음 본다. 그래서 제가 목 위로는 안철수가 맞고 그러면 몸통은 박지원인가 물어봤다. 그러면 3번 후보를 뽑으면 박지원이 상왕이 돼서 자기가 초대 평양대사를 가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평양대사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고려연방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고려연방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통일전술전략에 말려드는 것을 초대 평양대사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인지 물어보니 농담한 것이라고 한다.
이 나라 오천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사람은 강단과 결기가 있어야 한다. 배짱과 뱃심이 있어야 한다. 지금 나와 있는 사람들 한 번 다 보시라. 강단과 결기, 배짱과 뱃심이 있는 사람 누구인가. 정말 이 나라가 안보위기다. 오늘 새벽에 북이 또 도발했다. 나는 트럼프가 그대로 두지 않는다고 본다. 핵을 선제타격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만약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엄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순간이 오지 않도록 시진핑, 아베 그리고 트럼프와 협상을 해서 이 나라를 안정시킬 사람이 누군가.
저는 이제 양산으로 가야한다. 양산으로 가야하는데 제가 고향에 와가지고 좌파들한테 많이 당했다. 집 앞에서 물러나라고 데모를 하질 않나. 그리고 빚 다 없애주고 50년 먹고살 것을 마련해주고 청렴도 꼴찌를 일등을 시켜주고 그렇게 다 하고 나왔는데 퇴임하는 날 앞에서 소금을 뿌리질 않나. 저는 내 성질대로 산다. 성질을 참으면 암 걸린다. 그래서 나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따지지 않는다. 따지지 않고 소신대로 살고 안 되면 집에 가면 된다.
제 엄마같이 그렇게 당하고 또 까막눈이라서 글도 모르고 그런 서민들도 착하게 사는 서민들도 잘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게 홍준표의 마지막 꿈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좌측으로 싹 기울었다. 언론도 그렇고 여론조사도 조작하는 기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선거운동을 한다. SNS로 선거운동 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그랬다. 미국의 97% 언론들이 반트럼프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트위터 하나로 선거운동을 했다. 미국 국민들을 설득을 했다. 저는 SNS, 페이스북 하나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그것은 기자들이나 언론들이 왜곡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 열흘 남았다. 열흘 남았는데 제가 이 판을 한번 뒤집어보겠다. 제가 보궐선거 전문가다. 2001년도 동대문에 제가 DJ에게 쫓겨났다가 돌아와서 보궐선거 나가라고 할 때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절대적으로 불리했는데 한 달 만에 압도적으로 제가 이겼다. 지난 2012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 때, 52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그 당시에 정치하신 분들이 전부 상대방에 다 미뤄줬다. 그래도 홍준표가 당내경선에서 이겼지 않나. 3월 18일에 출마선언 했다. 그리고 13일 만에 자유한국당의 한국 보수적통정당의 대통령후보가 됐다. 그리고 난 뒤에 300억 아끼기 위해서 열흘 동안 대선운동을 못했다. 도지사를 일찍 나가버리면 줄줄이 사퇴를 하게 된다. 그래서 제가 피땀을 흘려서 빚을 다 갚았는데 나가면서 도민들에게 제가 나가면 170억 된다. 그리고 시장군수들이 도지사를 하려고 준비하려는 분들 줄줄이 사퇴를 하고 그러면 도에서 선거비용을 내야 하는 것이 300억정도 된다. 그래서 제가 열흘 대선운동 안 해도 좋다. 이것은 제가 손해를 보더라도 마지막에 나가면서 도민들에게 300억이라는 그 부담을 지워서 되겠는가 싶어서 미리 나오기 전에 내년 7월까지 경상남도 내의 중요정책은 다 결정해놓고 나왔다.
존경하는 김해시민 여러분, 지금 호남에서도 제 처가가 전라북도다. 그런데 전북 사위한번 찍어주자. 경비원 아들 한 번 대통령 만들어보자, 까막눈 아들도 대통령 될 수 있다고 전라북도에서 붐이 일어났고, 전라남도에서도 우리가 2~3%밖에 안 나오던 데에도 나이 드신 분들은 홍준표를 찍겠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그것 믿지 마시라. 제가 어떻게 장난하는지 다 알고 있다. 저는 대한민국 70%에 달하는 우리 서민들을 믿는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서민들의 꿈을 실현하겠다. 서민들이 꿈이 먹고 살기 힘들고 무시당하고 그렇게 살아도 대통령 될 수 있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서민들의 꿈일 수가 있다.
5월 9일에 전부 투표장에 가셔서 미리 투표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홍준표 대통령 만들어주면 되어서 김해현안 일거에 해결 다 해주겠다. 존경하는 김해시민 여러분, 이제 경비원 아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하니까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부터 신이 났다. 유류세를 인하한다고 하니까, 절반으로 깎아준다고 하니까 운전기사들이 전국적으로 신이 났다. 또 담뱃값 절반으로 뚝 떨어뜨린다고 하니 서민들이 화나면 담배를 못 끊지 않나. 젊은이들도 취직 안 되고 홧김에 담배를 태우는데 다 신이 났다. 그러니까 뒤집어진다. 5월 9일에 모든 가족들이 투표장에 가셔서 홍준표를 찍어서 우리 서민들의 꿈을 한 번 이뤄보자.
ㅇ 오늘 김해유세에는 이주영 중앙선대위원장, 김태호 전 최고위원, 안홍준 전 의원, 김한표 의원, 김성찬 경남선거대책위원장, 박완수 중앙선대위 의장단, 윤영석 의원, 강기윤 창원성산 당협위윈장, 박영진 김해갑 당협위원장, 이만기 김해을 당협위원장, 김명연 중앙선대위 수석대변인, 전희경 중앙선대위 대변인, 김성태 후보전략기획특보, 김대식 후보수행기획단장, 경남지역 시도의원들이 함께 했다.
2017. 4. 29.
자유한국당 공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