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변인 공식 논평 및 보도자료입니다.
홍준표 대통령후보는 2017. 5. 1(월) 11:50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역 광장에서 “홍준표를 찍으면 광주ㆍ전남이 산다” 광주ㆍ전남지역 공약 발표를 하였다. 황천모 수석부대변인은 그 주요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ㅇ "우리의 대통령입니다", "우리 시민의 대통령입니다", "우리의 안보를 지킬 후보는 누구인가", "우리 서민의 애환과 눈물을 홍준표 후보가 닦아드리겠다" 라는 사회자의 멘트가 자유한국당 불모지인 이곳에서도 선거분위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광주를 쾌적하고 잘사는 곳으로 만들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주적을 주적이라고 못하는 후보는 누구인가"라고 하면서 유일한 대안은 홍준표 후보임을 강조하였다. 시민들도 "으싸, 으싸" 힘을 돋우었다. 공약발표에는 많은 시민들이 주변 그늘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귀를 기울였다.
ㅇ 홍준표 후보 공약 및 말씀 주요내용
◇ 광주에서 검사 재직시 깡패들을 많이 잡았다. 업주들이 월정금을 뜯기지 않아 감사를 표시했다. 검사 인생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도시이다.
◇ 저는 40년전에 이미 지역감정을 버린 사람이다. 광주에서 10%만 찍어주면 은혜를 갚겠다.
ㅇ 홍준표 후보 공약 및 말씀 전문
존경하는 광주시민여러분, 제가 91년 3월부터 92년 8월까지 광주시민으로 살았다. 아마 지금 대통령 후보 나온 사람들 중에서 광주시민으로 살았던 사람은 홍준표 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광주시민으로 살면서 광주의 아픔과 호남의 아픔을 몸소 체험했고, 또 광주에서 검사를 하면서 깡패들 많이 잡았다. 깡패들을 소탕하는 바람에 모래시계 드라마가 거기서 나왔다. 제가 모래시계 검사로 광주에서 1년 3개월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깡패들이 로비를 해서 원래는 광주에 오면 2년을 근무해야 하는데, 1년 3개월 만에 서울로 쫓겨났다. 깡패들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서 그 이듬해 슬롯머신과 검찰내부 수사를 해서 쫓겨났다. 그래서 광주는 내 11년 검사 인생 중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곳이다.
광주가 야권의 심장이고 자유한국당의 불모지인줄 알고 있다. 그러나 예년의 선거와 달리 저는 처가가 전라남도 부안이다. 얼마 전에 우리 집사람도 광주도 왔을 것이다. 언론에 안비치고 소리 소문 없이 왔다 갔을 것이다. 제가 광주에 있을 당시 영산강 뱃노래를 많이 불렀다. 그 당시 97년 광주의 상징이 딱 두 곳 있다. 무등산과 영산강이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무등산에 갔다. 무등산에는 코스가 굉장히 많다. 산장 쪽으로 올라가서 7시간도 걸어보았다. 서석대, 입석대 등 지금도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은 광주에 와서 광주 전남 시민과 도민들에게 몇 가지 약속을 하고 가겠다.
오늘도 광주 군 공항을 이용해서 왔는데, 군 공항을 이전하고 그 자리를 스마트시티로 조성하겠다. 윤장현 광주시장과 상의하겠다. 두 번째, 농수산 및 전력분야 사물인터넷 시범특구를 광주에 조성하겠다. 세 번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기반구축을 위한 문화 콘텐츠 밸리를 조성하도록 하겠다. 네 번째, 친환경 자동차․ 에너지 선도도시로 광주를 지정해서 조성하겠다. 그리고 이 자리 광주송정역 및 광주역 역세권 개발 윤장현 광주시장과 의논해서 하겠다.
전라남도는 첫째, 에너지신산업 대단지 구축 등 미래성장산업 도시로 만들겠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농업인 부가 소득 창출을 위한 신성장․ 친환경 산업 육성을 하겠다. 세 번째, 익산과 여수, 목포과 부산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하겠다. 목포~부산 간 철도 고속화로 영․호남 교류를 추진해보겠다. 네 번째, 고흥을 차세대 국가우주항공산업 기지로 만들어 육성해보겠다. 그리고 제가 근무했던 경남 남해와 여수, 고흥을 엮어 남해안 관광단지로 만들어보겠다.
제가 광주에 오면서 느낀 것은 이제 지역감정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저는 전라도 처녀와 연애해서 40년째 살고 있다. 87년도 대통령 선거 때 울산지청에 근무했는데, 집사람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편이 갈렸다. 저는 YS를 찍자고 하고 집사람은 DJ를 찍자고 했다. 제 기억으로 선거 앞두고 1주일 정도 내내 싸웠다. 그 당시 굉장했고, 나중에 갈라서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결국 끝까지 싸우다가 막바지 가서 합의를 봤다. 부부가 일심동체인데 각자 찍으면 되겠냐해서 합의보자고 했다. 그래서 서로 YS와 DJ를 안 찍자고 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신정일 이라는 분을 찍기로 합의했다. 저는 들어가서 신정일을 찍고 바로 나왔는데 집사람은 5분 동안 안 나왔다. 그 당시 울산에서 신정일씨가 10표 나왔다. 저는 진짜 그렇게 찍은 줄 알았다. 93년도 슬롯머신 사건 수사를 하고, 95년도에 사표를 내고 나오면서 여성동아의 광주출신 여기자가 와서 집사람을 인터뷰했다. 거기서 이런 일화가 있었다고 했더니 ‘아마 사모님은 절대 신정일을 안 찍었을 것이다’고 했다. 그것이 87년도 이야기고 인터뷰는 95년도니까 8년 후다. 가고 나서 제가 물어봤더니 집사람이 DJ를 찍었다고 했다. 왜 그랬냐고 하니 ‘호남사람들의 한’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지역감정이 두텁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이제 광주도 달라졌으면 한다. 그래도 한때 광주시민이었고, 또 검사하면서 제가 광주 깡패들을 다 소탕했다. 그리고 충장로 상인연합회에서 제가 광주 떠날 때 91년도 8월에 제 기억으로 100만원을 가지고 왔다. 전별금으로 가져가라고 하더라. 받으면 안 된다고 하자, ‘오는 사람이 아니고 가는 사람이니까 준다, 충장로에 홍검사가 있을 때깡패들에게 월정금을 안 뜯겼다, 덕분에 이익이 수억이 된다, 100만원은 돈이 아니다’ 라고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셔서 제가 받아서 갔다. 그래서 광주가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에 쓰여 있는지 모르지만, 홍준표는 아버지가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 받는 경비원이었고 어머니는 까막눈이었다. 경비원과 까막눈의 아들도 대통령될 수 있고,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고 노력하면 대통령 될 수 있다. 그것이 나는 대한민국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대한민국 70%에 달하는 서민들의 애환이나 어려움과 아픔을 아는 사람은 홍준표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잘하겠다.
저는 이미 40년 전부터 지역감정 다 버린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시민여러분들이 이번에는 그래도 10% 정도는 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광주에서 10%만 찍어주면 은혜 갚겠다. 저는 바빠서 오늘 전주를 갔다가 충청도로 가야한다. 최근 서울, 영남, 수도권 이쪽은 분위기가 싹 바꾸었다. 어제 같은 경우에 서울 코엑스에 10만명이 모였다. 저도 대통령 선거를 이회창 때 2번, 그리고 이명박 때 1번 따라다녀 봤는데, 그렇게 인파가 많은 것 처음 봤다. 이제 수도권도 바뀌었다. 언론기관에서 한 것 전부 거짓말이다. 여론조사도 거짓말이다. 홍준표가 이긴다. 그리고 5월 9일, 경비원 아들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까막눈의 아들이 대통령 될 것이다. 이 나라 지역감정 없이 정말로 영·호남이 화합하는 그런 나라, 내가 만들어 보겠다. 감사하다.
ㅇ 오늘 광주ㆍ전남지역 공약발표에는 한경노 광주시당위원장, 김명연 선대위 수석대변인, 신보라 의원, 문충식(광주 동남을)ㆍ양병현(광주 서구갑)ㆍ김연욱(광주서구을)ㆍ이인호(광주북구을)ㆍ정윤(광주광산갑)ㆍ김정업(광주광산을), 이승안 전남도당위원장, 김승우(나주화순)ㆍ명욱재(해남완도)ㆍ임동하(여수갑)ㆍ김성훈(여수을), 김대식 후보수행단장, 박판석 유세지원부단장 등이 함께 했다.
2017. 5. 1.
자유한국당 공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