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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父 정진철
-호적상 출생연도는 1924년이나, 실제로는 1921년생으로 추정(월간중앙 2004년 10월호 숙부 정진형씨 인터뷰)
-정동영후보가 1953년생인데 전주고 2학년때인 1969년 48세의 나이에 간경화로 사망
-정진철이 성장하던 1920-30년대는 조선인이 초등학교 교육을 받기도 힘든 시기였음. 이 어려운 시기에 정진철은 순창에서 남원까지 유학해서 남원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함.
*초등학교 교육을 조선인이 받는다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절에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는 혜택을 받은 것은 그만큼 정진철의 집안은 일제통치하에 잘 나가는 집안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임.
-남원농업고등학교 졸업한 정진철씨는 일제의 금융조합에 들어가 해방 때까지(1940-1945)근무함.
*금융조합은 일제의 침략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조선농민들에게 자금과 인력을 동원하기 위한 통제기구였음. 태평양전쟁 시기에 금융조합은 일제의 공출기관으로 일본 제국주의 패권주의에 협력하는 기관이었음.
-한국전쟁을 전후 정동영후보의 부친은 대한청년단에서 활동하게 됨. 이 우익단체의 구성원 가운데 친일지주나 친일반민족 행위자가 많았음. 이들은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친일행적을 감추고자 하였음.
-1946년에 25세 나이에 구림면 2대 면장 취임.
-1953년 구림면 7대 면장 취임.
2.문제제기
2-1.정동영후보 부친이 일제통치하에서 ‘남원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막강한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일제금융조합에 들어간 것은 일제하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임.
정동영후보가 이회창씨 부친의 일제치하 검찰서기 행각에 대해 “친일문제는 도덕성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고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할 경우 국민교육은 물론이고 후손들 교육에도 기준이 서지 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한 만큼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회에서는 조속히 이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임.
2-2.정동영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부친의 친일행각에 대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에 대하여 도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역사에 대한 관점이다.”(동아일보 2001.8.28)라고 주장한 바 있음.
이제 정동영후보 본인이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본인의 부친에 대한 친일행각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부친의 친일행각에 대해 정후보가 솔직하게 고백하고 국민적 검증을 받아야 할 것임
2-3.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국회제출자료에 따르면 정동영후보 부친 정진철씨는 지난 1기(904-1919)과 2기(1919-1937)에 대한 조사중 친일반민족행위가 드러나지 않아 조사대상자로 선정된 바 없다고 함.
현재 3기(1937-1945) 조사가 진행중이고 이 기간동안(1940-1945) 정동영후보 부친이 일제 금융조합에서 일했던 것이 명백히 밝혀진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함.